파인다이닝 소개에 필요한 수사는 말 해 보아야 입만 아플 정도인 발우공양. 하지만... 뭔가 특별한 느낀 점이 있어, 제 나름대로 리뷰를 작성해 봅니다. 이곳은 여러 차례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되었고, 올해는 테이스트오브서울 2021 100선 레스토랑에 선정되었습니다. 조계사 바로 앞 템플스테이 빌딩에서 사찰음식의 정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자리는 일행별 개인실로,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예약할 때, 시간이 도래했을 때 컨시어지에서 전화를 걸어서 다이닝 시간을 안내해 주십니다. 입구에 발열 체크와 소독제 비치, 개인실 안쪽에도 소독제와 함께 물티슈가 따로 제공됩니다. 음식은 사찰음식으로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홍거)가 들어 있지 않고, 육식 재료도 일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엄격한 비건 채식주의자도 함께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코스명에 불교철학이 담겨 있고, 메뉴판을 읽는 동안에도 음식을 통해 수행을 한다는 발우공양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래 가장 저렴한 런치메뉴인 선(禅)을 주문하려다, 그 위의 원식(願食)을 주문합니다. 이 코스는 선보다 좀 더 다양한 메뉴가 추가되어 있고, 식사량이 모자랄 때 연잎밥과 냉면을 더 주문할 수 있습니다. 식전 술적심으로 무화과 절임과 아욱죽, 물김치가 제공됩니다. 무화과의 새콤달콤함과 아욱죽 된장의 고소함, 물김치의 시큼하면서 시원한 맛이 아주 조화롭습니다. 다음으로는 상미, 뿌리채소 콩가루무침과 된장 양념 두부구이, 무초강채. 양념 두부구이는 직접 손으로 만드신 두부의 고소함에, 들기름을 이용하여 콩 특유의 고소한 감미를 고급스런 향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무초강채는 채소의 아삭함을 주제로, 줄기채소와 사과의 씹히는 식감과 맛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뿌리채소 콩가루무침은 마와, 연근 등 뿌리채소를 콩가루로 마무리하였는데, 줄기채소의 아삭함과 다르게 호쾌하게 뚝 끊어지는 뿌리채소의 식감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담미와 승소 순서, 모듬 버섯강정과, 서리태 우엉조림, 모듬 장아찌와 모듬전, 표고버섯 냉면과 마구이, 사찰만두입니다. 버섯강정은 깊은 버섯즙과 감칠맛으로, 가을 향에 흠뻑 취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서리태 우엉조림도 계절식재료인 우엉의 깊은 맛이 간장졸임에 잘 묶여 있습니다. 모듬 장아찌는 당근과 무, 연근의 맛을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모듬전은 동부가 아닌 진짜 녹두의 깊은 맛이 살아 있습니다. 표고버섯 냉면도 고기가 없다고 생각 할 수 없는 깊은 맛을 아주 은은한 표고향으로 살려 냅니다. 면도 적절한 메밀 함량으로 경쾌하게 삶겨, 맛 음미에 즐거움을 줍니다. 마구이는 참마를 식감이 망가지지 않도록 가볍게 구워, 흑임자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사찰만두는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사찰음식의 특성상 조금 궁금했는데, 고기의 식감을 잘게 다진 버섯 등의 속재료와 여의채가 조화롭고도 풍부한 만두의 맛을 내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연잎밥과 된장찌개, 사찰김치 두 종류와 장아찌, 나물 두 종류가 제공되었습니다. 연잎밥은 잎에 들러붙지 않도록 잘 쪄져서, 은행과 잣이 든 밥에 연잎의 향이 풍부하게 배였습니다. 된장찌개는 '맛의 방주'에 수록될 정도로 유서 깊은 맛인데, 잘게 썰린 버섯의 향이 전통 된장과 잘 어우러져 정말 풍부한 향미를 냅니다. 사찰김치는 젓갈 대신 간장과 홍시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김치로, 정말 경쾌하고 시원한 동치미와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장아찌는 아마 아욱 줄기 인 것 같은데, 정과처럼 견고하고 달달한 맛입니다. 나물 두 종류도 키 작은 새순 부분이 섬세하게 손질되어 입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고소합니다. 연잎밥이 너무 맛있어 한 번 더 주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어 주신 도라지 정과와 호박식혜. 역시 절제된 단맛과 단아함으로 정갈한 코스에 잘 어울리는 훌륭한 맛입니다. 기존에 채식주의를 하고 있지 않은 제게도, 고기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식단이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맛의 완성도와 식감, 색감, 향이 훌륭하며, 즐거운 연주회를 감상한 듯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함에도 어떠한 동물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다는 점이 이번 식사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었습니다. 은은히 울리는 레스토랑의 가야금 연주와, 분주히, 그러나 눈에 띄지 않게 오가시며 개인실을 신경써주시는 직원분들의 태도는 이 음식점을 더욱 사랑스럽게 합니다.더 보기